그리스로마신화 / / 2020. 12. 22. 10:21

메두사 신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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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두사 이야기

메두사라는 괴물이 있었습니다. 그 괴물의 얼굴을 보는 사람은 모두 돌로 변해버리는 무시무시한 괴물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영화 소재로 자주 쓰이고 있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대표적 괴물 중 한 명입니다.

메두사는 머리털이 모두 뱀으로 되어 있고, 용의 비늘과 멧돼지 어금니와 손과 발은 청동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원래부터 메두사가 이렇게 끔찍한 모습을 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습니다. 메두사는 원래 아름다운 아가씨였습니다.

 

 

<메두사. 터키 소재>

 

 

메두사는 고르곤이라는 세 자매의 막내였습니다. 그래서 정식 이름은 고르곤 메두사입니다.

그런데 이 자매들은 자기들이 아름답다고 너무 뻐기고 다녔습니다. 자랑도 적당히 하면 애교로 봐줄 수도 있는데 이 자매들은 지나쳤습니다. 자기들이 신보다도 더 아름답다고 떠들고 다녔던 것입니다.

이에 화가 아테네 여신이 세 자매를 괴물로 바꾸었다고 하며 특히 메두사의 곱슬 머리칼을 모두 뱀으로 바꿔버렸다고 합니다.

 

또 다른 설에 의하면 바다의 신과 메두사가 정을 통한 적이 있는데 하필 그 장소가 아테네 여신의 신전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신전이 더렵혀진 것에 격분한 아테네 여신이 그녀를 괴물로 만들었다고도 합니다.

 

 

다나에와 페르세우스

이 괴물을 페르세우스가 처치했습니다. 페르세우스의 어머니는 다나에였습니다. 다나에는 아르고스의 왕인 아크리시오스의 딸이었습니다. 어느 날 아크리시오스는 자기의 외손자에 의해 죽을 것이라는 신탁의 예언을 듣습니다. 겁이 난 아크리시오스는 딸 다나에를 청동 탑에 가두었습니다. 아예 남자들이 딸에게 접근을 못하게 한 것입니다. 청동 탑은 위로만 구멍이 나있어서 하녀들이 위에서 식사를 달아 내려 주었다고 합니다.

 

졸지에 청동 탑에 갇혀 밖에 나가기는 커녕 위로 난 구멍을 통해 텅 빈 하늘만 보게 된 다나에는 슬픔에 잠겼습니다. 그곳에서 최소한 아버지가 죽을 때까지는 밖에 나올 수 없으니 당연히 큰 슬픔과 절망이었을 겁니다. 다나에는 하늘만 바라보며 구원의 손길이 오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황금 빗물로 변해 다나에를 찾아간 제우스>

 

 

그런데 어느 날 하늘에서 청동 탑을 들여다 보던 제우스의 눈에 다나에가 보였습니다. 제우스 눈에 들어온 다나에는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예쁜 아가씨만 보면 바람기가 발동하는 제우스였습니다. 이번에도 다나에가 너무 예뻐 제우스의 바람기가 또 발동했습니다. 제우스는 황금 빗물로 변해 청동 탑 안으로 스며 들어가서는 다나에와 하룻밤을 지냅니다. 그리고 다나에는 아들을 낳는데 그 아이가 바로 페르세우스였습니다. 그러니 페르세우스는 제우스의 아들인 것이죠.

 

딸이 아들을 낳았다는 소리에 아크리시오스는 그들을 차마 죽이지는 못하고 딸과 페르세우스를 궤짝에 넣어 바다에 버립니다. 그러나 제우스의 도움으로 그들이 탄 궤짝은 세리포스라는 섬에 안전하게 도착하게 되고 그곳에서 딕티스라는 착한 어부를 만나 그의 집에서 살게 됩니다.

 

딕티스는 그 나라의 왕인 폴뤼덱테스의 동생이었는데 하루는 왕이 동생 집에 갔다가 다나에를 보고 욕심이 났습니다. 그러나 장성한 페르세우스가 있어 마음대로 못하다가 페르세우스를 제거할 계략을 꾸몄습니다.

그가 생각한 계략은 그 섬에 사는 모든 사람은 말 한 마리를 세금으로 바치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페르세우스 모자는 세금을 낼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폴뤼덱테스 왕은 대신 메두사의 머리를 잘라오라고 명령합니다. 

메두사는 누구나 그 얼굴을 보는 순간 돌로 변해서 잡으러 간 사람은 있어도 돌아온 사람은 없는 무시무시한 괴물이었습니다. 왕은 페르세우스가 메두사의 머리를 가져오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아예 메두사로 인해 돌로 변해 돌아오지 못하게 하려 한 것이죠. 그래서 다나에를 자기 아내로 삼는데 걸림돌을 없애려 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왕의 말에 페르세우스는 제우스의 아들답게 용감히 길을 떠납니다. 메두사의 머리를 가져오라는 말에 겁이 날 법도 하지만 페르세우스는 이미 영웅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가는 길에 여러 조력자들이 나타나 그를 돕습니다. 페르세우스가 메두사의 머리를 얻게 되는 이야기까지 하면 너무 길어지니 그 이야기는 다음에 하겠습니다.

 

 


 

겸손, 사람에게 겸손이 진짜 겸손이다!

자랑하다 망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니오베는 자식이 많음을 자랑하다 망했고, 아라크네는 베 짜는 솜씨를 자랑하다 망했습니다. 메두사를 비롯한 고르곤 세 자매는 자기들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다 망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자랑했다고 무조건 벌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인간들에게만 자랑했으면 인간들에게만 미움받았을 겁니다. 그러나 이들은 자랑이 지나쳐 신을 비웃었습니다. 그래서 신들에게 모두 벌을 받은 것입니다.

 

성경 어느 곳에도 예수님 말씀에 사람에게 죄를 지으면 용서받지만 성령에 죄를 지으면 용서받지 못한다고 하신 대목이 있습니다. 정확한 신학적 의미는 모르지만 글귀만으로 보면 위에 말한 사람들이 받은 벌과 같은 것 같습니다.

 

그럼 신만 욕하지 않으면 되는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모든 신화는 은유가 포함돼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야기 속에서 어떤 은유를 보고 어떻게 해석하는지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해석이 다를 수 있기에 신화는 재미있고 두루 읽히고 있을 겁니다.

 

위의 이야기가 가진 의미도 굳이 신을 욕하고 비웃지 않아도 그 정도로 자만하지 말라는 이야기일 겁니다. 사람 앞에서도 너무 자신을 드러내지 말라는 이야기라 생각합니다.

사실 종교를 가진 사람이라 해도 신을 만날 수는 없습니다. 적어도 살아 있는 동안에 신을 만난다는 것은 불가능할 겁니다. 그러면 만날 수도 없는 신에게 어떻게 잘해 드릴 수가 있을까요? 악수를 할 수도, 업어 드릴 수도, 식사 대접을 할 수도 없습니다. 인간이 신에게 잘해드린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될 겁니다. 신이란 존재가 무엇이 아쉽고 부족해서 인간의 도움을 필요로 하겠습니까?

 

다만 신에게 잘해드린다는 것은 신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일 겁니다. 그것이 최고의 예배이지 형식적인 예배 행위가 진짜 예배는 아닐 겁니다.(예배 형식이 불 필요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면 신의 말씀을 실천한다는 말은 무슨 뜻 일가요? 그건 신이 귀하게 여기는 것을 나도 귀하게 여기는 일일 겁니다. 피카소의 그림에 침을 뱉으면서 피카소의 예술 세계를 존경한다고 할 수 없듯이 신이 귀하게 여기는 것을 업신여기며 신을 경배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그럼 신은 무엇을 귀하게 여기실까요? 신이 창조한 창조세계를 귀하게 여기지 않으실까요? 신이 이 세계를 창조했는데 이 세계를 파괴하며 신을 경배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될 겁니다. 그러니 신이 창조한 이 세계 그리고 신이 창조한 생명체를 귀하게 여기는 것이 신을 경배하는 것일 겁니다.

그러니 결국 신 앞에 겸손하고 신을 경배한다는 것은 신이 창조한 이 자연과 사람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에게 잘해주는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니오베나 아라크네나 메두사나 그들이 신을 비웃어서 벌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신에 비유할 정도로 교만하고 타인에게 못되게 굴었다는 은유가 아닐까 합니다. 자신은 신에게 겸손하다 말하면서 사람에게 교만하게 구는 인간들이 있습니다. 그들이야 말로 성령에 죄를 짓는 사람들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니 사람 앞에서 겸손하고 자연을 사랑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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