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이아의 왕 펜테우스
앞전에 제우스의 애인으로 제우스에게 자기를 사랑한다면 본모습을 보여 달라고 했다가 제우스의 광휘에 타 죽은 세멜레 이야기를 했습니다. 세멜레가 죽을 때 그녀의 배 속에는 아기가 있었는데 제우스는 그녀의 배에서 아기를 꺼내 자기 넓적다리에 넣고는 달이 차자 꺼냈다고 합니다. 그 아기가 바로 술의 신 디오니소스(박커스)였습니다.
세멜레 이야기는 아래를 참고하세요.
2020/12/07 - [그리스 로마 신화로 생각해 보기] - 사랑 때문에 타 죽은 세멜레
디오니소스는 이른바 디오니소스 축제를 열며 세상을 돌아다녔습니다. 그에게는 항상 그를 추종하는 많은 여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단체로 취해 노래하고 춤추곤 했습니다. 그가 가는 곳마다 술판이 벌어졌고 술에 취한 축제가 열렸습니다.
디오니소스가 아카이아에 왔습니다. 역시나 그곳에서도 축제가 열렸습니다. 아카이아의 남녀노소가 모두 그리로 몰려가 술판을 벌이며 광란의 축제에 빠져 들었습니다.
아카이아의 왕인 펜테우스는 축제가 못마땅했습니다. 그에게는 디오니소스 축제는 저질스런 광란에 불과했습니다. 그는 부하들을 시켜 디오니소스를 잡아오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부하들은 디오니소스를 잡아오지를 못하고 그의 추종자 한 명을 잡아왔습니다.
그는 뱃 사람이었는데 어느 섬에서 술에 취한 어린 소년을 선원들이 배에 데려왔다고 했습니다. 그는 소년을 보자 인간이 아니라 신임을 직감하고 보호하고자 했으나 불량한 선원들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를 뺀 나머지 선원들은 디오니소스의 벌을 받아 모두 돌고래가 되었습니다. 혼자 남은 그는 이후 디오니소스의 추종자가 되어 그를 따라다니고 있다가 잡혀 온 것이었습니다. 펜테우스는 그를 감옥에 넣고 부하들을 시켜 죽이려 했습니다. 그러나 저절로 감옥 문이 열리고 그는 탈출했습니다. 그가 바로 디오니소스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펜테우스의 끔찍한 죽음
그럼에도 펜테우스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축제가 열리는 키타이론 산으로 직접 가보았습니다. 몰래 숨어서 광란의 축제를 보고 있던 그를 그의 어머니가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눈에 그는 사랑하는 자기 아들이 아니라 들판을 헤매는 멧돼지로 보일 뿐이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지팡이를 던져 그에게 부상을 입혔습니다.(술에 취하면 누구든 힘이 세지는 법이죠.)
게다가 자기 언니들까지 부르며 멧돼지를 잡자고 했습니다. 그녀의 언니들, 그러니까 펜테우스의 이모들까지 달려와 펜테우스를 잡으려 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잔인하니 심신이 미약하신 분들은 패스해주세요~)
언니들은 펜테우스를 공격하며 그의 팔을 빼버렸습니다. 다른 이모는 남은 팔 한쪽마저 빼버렸습니다. 그는 피를 흘리며 어머니에게 살려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머리를 뒤로 젖히며 괴성을 질렀습니다. 그리고는 아들의 머리를 뽑아버렸습니다. 이렇게 펜테우스는 참혹한 죽음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술 취함을 조심해야
끔찍한 일입니다. 아무리 술에 취했기로서니 자기 아들도 몰라보고 아들이 멧돼지인 줄 알고 죽이다니!
술에 취한 사람을 일컬어 인사불성이 되었다고 합니다. 정신을 잃어서 상황을 전혀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흐리멍덩한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술에 취하면 그렇게 됩니다. 속에 있는 말을 과장하여 꺼내게 됩니다. 절대 말해서는 안 되는 일조차 말하게 됩니다. 거리감이 없어져서 전신주에 부딪히고 다리가 풀려 서있기조차 힘들어집니다. 무엇보다 판단력이 흐려져 사고를 칠 수 있게 됩니다. 게다가 힘도 세져서 문제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언젠가 자정이 다 되어가는 시간에 친구와 카페에 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인근 술집에서 술에 취한 사람이 길거리에 나와 난동을 부리고 있었습니다. 호리호리한 체격이었는데 어찌나 거세게 난동을 부리는지 덩치 큰 사람들도 감당하질 못했습니다. 결국 경찰이 출동했는데 경찰들도 제압을 하지 못했습니다. 하다 하다 안되니 결국엔 기절시키는 총을 쏴서 제압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 한 번은 어릴 적이었는데 깊은 밤에 가족들이 tv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문 밖에서 쿵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냥 물건이 떨어지는 소리가 아님을 모두가 직감했습니다. 뛰어나가 보니 어떤 사람이 우리 집 옆에 있는 난간에 앉아있다가 떨어진 것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떨어진 자리에 피가 흥건했습니다. 머리에 심각한 부상을 입은 것 같았습니다. 문제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보니 저만치 비척비척 거리며 길을 가고 있더군요. 자기가 부상당한 것도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죽을 정도의 높이는 아니었지만 꽤 심한 부상을 입었을 겁니다.
이런 건 그래도 약과입니다. 요즘은 술에 취해서 범행을 저지르는 일들도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을 심신 미약 상태라 하여 죄를 경감해 주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심신 미약의 상태는 맞으나 그렇다고 벌을 감해 주는 건 아닌 거 같습니다. 그런 논리라면 제정신이지만 화가 나서, 기분이 나빠서 타인에게 상해를 입혀도 되는 것 아닐까요?
술에 취하면 인사불성이 되어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하게 된다는 건 상식으로 다 아는 이야기입니다. 그걸 알면서도 술에 취해 범행을 저지른다면 그건 더욱 무거운 벌을 주어야지 벌을 줄여서는 안 될 겁니다. 순간의 격분 상태에서 아차 하는 것은 그래도 참작할 수도 있지만, 술에 취한다는 것은 취하기 전에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인지한 상태였기에 참작을 고려할 일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경우 그건 정신미약이 아니라 습관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술에 취하면 자기 자식도 몰라 볼 정도로 인사불성이 됩니다. 그러니 술에 취한 사람과는 부딪히지 않는 게 상책입니다. 술에서 깨어난 다음에 타일러도 늦지 않습니다.
펜테우스는 술 취한 사람들을 찾아갔습니다. 불행의 책임이 그에게도 있다 할 것입니다.
펜테우스 신화가 예수의 이야기?
펜테우스의 부하들에게 끌려갔던 선원이 실은 디오니소스라고도 합니다.
어느 글을 보니 디오니소스가 말없이 끌려갔던 장면과 기독교의 예수님이 순순히 끌려갔던 장면, 그리고 소크라테스가 거부하지 않고 독배를 받는 점등의 유사성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예수의 이야기는 신화의 짜깁기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아마 <예수는 신화다>라는 책에 나오는 내용 같습니다.
그러나 펜테우스 신화 속의 디오니소스와 예수님의 이야기는 차이가 있습니다. 디오니소스는 무자비한 복수를 했지만 예수님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두 이야기가 가지는 근본적인 차이입니다. 때문에 결코 같은 사건의 두 가지 버전이 아니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수 천년의 세월이 흐르며 인간 세상엔 비슷한 사건 사고들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야기와 비슷한 일들이 많았음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비숫하다고 해서 그 사건을 동일 사건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길을 가다 제가 미끄러져 넘어진 일을 백 년 전에 장안에 사는 김서방이 눈길에 미끄러져 넘어진 일과 동일시하는 것과 같습니다. 저와 백 년 전의 김서방은 분명 다른 인물이고 미끄러진 것도 분명 각기 다른 개별 사건입니다. 비슷하다고 해서 같은 것은 결코 아닙니다.
진흙을 보고 누구는 신발이 지저분해질 것이라고 투덜거릴 것이고, 누구는 도자기 재료를 발견했다고 좋아할 것입니다. 신화의 이야기와 종교의 이야기에서 좋은 것을 취하느냐 나쁜 것을 취하느냐는 각기의 몫입니다. 그러나 진정 중요한 것은 어느 쪽이 세상을 바로 세우고 행복하게 하느냐일 것입니다. 한쪽은 흥미를 이용해 책을 판매할 목적이고 한쪽은 세상을 구원할 목적의 차이가 있지 않나 합니다.
자극적인 것을 찾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그보다는 모두의 행복을 찾는 시대가 되면 좋겠습니다. 신화와 종교의 일차적인 목적은 모두의 행복을 위함이 아닐까요. 그러기에 오늘도 그 둘은 건재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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