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편에 누이 에우로페를 찾으러 나섰다가 용을 죽인 카드모스 이야기를 했습니다.
2020/11/30 - [문학과 생각] - 카드모스, 영웅은?
카드모스에겐 세멜레라는 딸이 있었습니다.
세멜레에겐 고모 뻘 되는 에우로페를 제우스가 황소로 변해서 납치했었지요.
덕분에 제우스의 아내인 헤라는 단단히 화가 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에우로페의 조카인 세멜레에게도 제우스는 손을 뻗었습니다.
그래서 세멜레는 제우스의 아이를 임신하게 됩니다.
헤라는 이를 보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자기 남편의 아이를 가졌는데 화가 나는 게 당연하죠.
그러나 헤라는 제우스에겐 바가지를 긁지 않았습니다. 항상 그랬습니다.
그 화풀이를 제우스의 애인들에게 돌렸습니다.
이번에도 헤라는 세멜레를 가만 둘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노파의 모습으로 변장을 하고 세멜레를 찾아갔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세멜레는 자기 집을 방문한 노파와 재미나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다 자기가 제우스의 총애를 받고 있다고 자랑했습니다.
그러자 노파로 변장한 헤라가 세멜레에게 말했습니다.
"요즘은 제우스 행세를 하고 다니는 인간들이 많아서 말이야...
정말 제우스라면 아내인 헤라와 같이 있을 때처럼 본모습을 보여 달라고 해봐요.
가짜라면 못 보여줄 것이고 진짜 제우스라면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겠지."
사람은 아무리 인격이 성숙한 사람이라 해도 조그마한 의심이라도 들어가면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습니다.
세멜레도 그랬습니다.
헤라의 꾐이란 것을 알지 못한 세멜레는 헤라의 말대로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녀는 제우스를 만나 선물을 달라고 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제우스는 그녀의 요구는 무엇이든 들어주겠다고 흔쾌히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세멜레는 헤라와 같이 있을 때의 원래 당신의 모습을 보여 달라고 했습니다.
제우스는 아차 했습니다. 설마 그런 요구를 하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한번 내뱉은 말은 거두지 못하게 되어 있어 어쩔 수 없이 자기의 본모습을 보여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우스는 자기의 힘을 최대한 줄여서 자기 본모습을 보는 세멜레의 충격을 줄여 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소용없었습니다.
제우스가 본래의 모습을 보이자 안타깝게도 세멜레는 신의 광휘에 타 죽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제우스는 세멜레의 몸에서 아기를 꺼내어 자기의 넓적다리에 넣고는
달이 찬 뒤에 꺼내었습니다. 그 아이가 술의 신 디오니소스(박쿠스)였습니다.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살 때에
뱀이 이브를 꾀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이브를 에덴동산에 살게 하실 때에
모든 과일을 먹어도 되나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과는 먹지 말라고 하셨죠.
먹으면 반드시 죽게 된다고 일러주었습니다.
그런데 뱀은 이브에게 죽지 않을 거라고 말하며 먹어보라고 꾀었습니다.
이브는 뱀의 꾐에 넘어가 선악과를 먹게 되고 결국 둘 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의심은 사람의 마음을 멀게 합니다.
이브도 세멜레도 혹시나 하는 의심에 넘어가서 인생을 망치고 말았습니다.
얼마 전 이야기한 파에톤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2020/11/09 - [문학과 생각] - 파에톤 콤플렉스
태양의 신이었던 헬리오스가 아들인 파에톤에게 무엇이든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하지요.
그때 파에톤은 아버지의 태양 마차를 몰게 해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건 신들도 몰기에 버거운 일이었습니다.
일개 인간이 몰 수 있는 마차가 아니었죠.
그러나 헬리오스는 약속한 바를 어길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태양 마차를 파에톤에게 맡기는데,
파에톤은 아버지의 우려대로 죽고 맙니다.
이처럼 아무리 기쁜 일이 있어도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헬리오스도 제우스도 섣부른 말로 인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습니다.
세멜레의 이야기를 통해 의심이 얼마나 무서운 지
그리고 말을 얼마나 조심해야 하는지, 특히나 기쁨이 넘쳐 날 때 하는 말을 얼마나 조심해야 하는지 배웁니다.
사실 말에 실수가 없고 신중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살아가면서 겪을 고통의 상당 부분을 줄일 수 있을 겁니다.
오죽하면 명심보감에 이르길
'취중불언은 진군자요 재상분명은 대장부'라고 했을까요?
(술 취해서 헛소리 안 하면 참으로 군자이고, 재물에 흔들리지 않으면 대장부이다.)
말의 수준이 그 사람의 인격의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말을 조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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