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게노르의 아들아, 그대는 왜 그대가 죽인 뱀을 보고 있느냐? 사람들은 그대도 뱀으로 보게 되리라."
용에 관한 이야기들
용은 과연 실제 했던 동물일까요?
제가 어렸을 때 초등학교에 도는 괴담 중에 학교 공사 중에 이무기(용기 되기 직전의 뱀)를 죽게 해서 소풍 갈 때면 비가 내린다 하는 말이 있었습니다.(그런데 제 기억에 비 오는 날 소풍은 없습니다.)
그리고 제가 살던 동네에 야산이 있었는데 역시 공사 중에 용인지 뱀인지를 죽여서 인부들이 죽었다는 괴담도 있었습니다.
저희 아버지도 젊었을 때 용을 보셨다고 합니다. 어느 날 동네 사람들이 용이 나타났다고 난리가 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보니 저 멀리 용 같은 것이 하늘로 오르고 있더랍니다. 그런데 용이 어디 있겠습니까? 분명 용은 아니었지요. 저희 아버지께서도 용일리가 없다고 생각하고 저 멀리 하늘로 오르는 용을 실눈을 뜨고 가만히 지켜보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알아보니 용이 아니고 회오리바람이었다고 하셨습니다. 회오리바람이 하늘로 솟구치는 걸 용오름이라고 하나요? 아니면 바닷물이 회오리바람에 하늘로 솟구치는 걸 용오름이라고 하나요? 하여간 그러한 자연현상이었다고 합니다. 용을 봤다고 하는 말들은 대부분 자연현상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시대에 그런 자연현상을 보고 만들어진 말입니다.
용은 판타지 소설이나 영화에 단골손님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용은 상상 속의 동물이라 하는데 동양이나 서양이나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고대 시대에 동서양의 교류로 용이라는 상상의 괴물에 대한 개념이 전파된 것인지 아니면 고대에 정말로 용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네요. 물론 실제로 존재했다고 보기는 어렵겠죠.
흔히 용은 뱀이 변해서 되었다고 합니다. 생김새가 비슷해서 그렇게 이야기되지 않았나 싶네요.
용은 동양에서는 상서로운 동물로 이야기됩니다. 그러나 서양에서는 나쁜 동물로 묘사되곤 합니다.
대표적인 게 성서입니다. 성서의 계시록에는 용이 마귀를 대표하는 짐승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아마 용이 뱀과 비슷하고 뱀은 창세기에서 이브를 꾀어 죄를 짓게 만든 동물이어서 그러지 않나 싶습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도 용(뱀)이 나옵니다. 정확히는 뱀 같기도 하고 용 같기도 하고 불분명합니다.
카드모스 이야기에 나옵니다. 신화에서 뱀은 테베라는 도시를 세우는 재료가 됩니다.
카드모스 이야기
제우스가 난봉꾼이라는 건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러나 제우스는 신이기에 그가 여기저기 뿌린 씨들은 단순한 불륜의 씨앗이 아니라 인간 세상의 영웅들로 자라납니다. 페르세우스, 헤라클레스, 디오니소스, 헤르메스... 등등. 제우스의 아들들은 인간 세계의 영웅이 되기도 하고 올림포스 산에서 사는 신이 되기도 합니다.
아무튼 제우스는 한 번은 에우로페라는 아가씨에게 한눈에 반해 버립니다. 그래서 신들의 왕이면서도 구차하게 황소로 변해서 에우로페를 유혹합니다. 해변가에서 놀던 에우로페는 멋진 황소를 보고 등에 타는 데 이 황소는 바다를 헤엄쳐서 어느 섬에다 에우로페를 내려놓습니다. 납치를 한 것이죠. '유럽'은 그녀의 이름은 따서 지은 이름입니다.
한편 딸이 사라지자 아버지는 아들에게 누이를 찾아오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그리고 찾지 못하면 돌아 올 생각도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아들은 사라진 누이를 찾기 위해 여기저기 다녀보지만 찾지를 못합니다. 제우스가 숨겨 놓았는데 어떻게 찾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렇다고 돌아가자니 아버지가 무서워 새로운 곳에 정착하고자 합니다.
아들의 이름은 카드모스였습니다. 카드모스는 아폴론 신에게 자신이 어디에 정착하면 좋을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신은 들판에 암소가 한 마리 있을 텐데 암소를 따라가라고 일러주었습니다. 그 암소가 가다가 쉬는 곳에 성벽을 쌓고 도시를 건설하라고 일러주었습니다.
카드모스가 보니 정말 암 소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암소를 따라갔습니다. 그리고 신의 말대로 암소가 풀밭에 눕자 그곳에 성벽을 쌓으려고 했습니다.
그는 부하들에게 신에게 제사드릴 물을 길어오라고 했습니다. 부하들은 그의 말대로 신에게 제사 드릴 깨끗한 물을 길으러 나섰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숲 속에서 동굴을 발견했습니다. 동굴 안에는 맑은 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카드모스의 부하들은 물을 길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그 동굴에는 커다란 뱀이 한 마리 있었습니다. 그 뱀은 전쟁의 신인 마르스의 것이었습니다.
그 뱀을 본 카드모스의 부하들은 얼어붙었습니다. 뱀의 모양이 그냥 뱀이 아니라 괴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뱀은 황금 볏이 나있고, 눈에서는 불이 뿜어지고 있었으며, 몸은 온통 독액으로 부어 있었습니다. 혀는 세 갈래로 갈라져 날름거렸고 이빨은 세줄로 나있었습니다. 크기도 거대해서 몸을 곧추세우니 숲을 내려다볼 정도였습니다.
요즘 말로는 뱀보다는 용에 가까울 겁니다. 불쌍한 카드모스의 부하들은 물려 죽고, 감겨 죽고, 독액에 죽어 나갔습니다.
물을 길으라고 보낸 부하들이 돌아 오지 않자 카드모스는 부하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리고 동굴 앞에서 죽어 있는 그들의 시체를 보았습니다. 카드모스는 분노했습니다. 그리고 거대한 뱀을 보고는 뱀을 죽여서 부하들의 원수를 갚지 못하면 자신도 죽겠노라 다짐하고 뱀을 공격했습니다.
카드모스에게 있는 것이라고는 사자 가죽으로 만든 방패와 창 한 자루와 투창 한 자루가 다였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무기들보다 더 강인한 용기가 있었습니다. 그는 뱀과 사투를 벌였습니다. 우선 그는 성벽도 무너뜨릴 정도의 바위를 집어 들고는 뱀에게 던졌습니다. 그러나 뱀의 단단한 비늘과 가죽이 돌의 충격을 막아주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투창을 던졌습니다. 이번에는 비늘과 가죽도 뱀을 보호하지 못했습니다. 투창은 뱀의 등 한복판에 꽂혔습니다. 고통에 괴로워하던 뱀은 창 자루를 이빨로 물고 빼어냈습니다. 그러나 쇠로 된 창 끝은 그대로 몸에 박혀 있었습니다. 뱀은 극도로 화가 났습니다. 입에는 거품을 물고 독기를 입에서 내뿜었습니다. 거대한 뱀은 카드모스를 공격했습니다. 뱀이 지나가는 자리의 숲의 나무는 다 쓰러졌습니다.
그러나 카드모스는 사자 가죽으로 뱀의 공격을 막아냈습니다. 그리고 들고 있던 창으로 뱀의 입속을 찔렀습니다. 얼마나 세게 찔렀는지 뱀은 뒤에 있던 나무와 함께 창에 박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거대한 뱀은 죽고 말았습니다.
카드모스가 죽은 뱀을 내려다 보고 있을 때 갑자기 소리가 들렸습니다.(어디서 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아무튼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그것은 여신 아테네의 목소리였습니다.
아테네는 카드모스에게 뱀의 이빨을 땅에 뿌리라고 했습니다. 카드모스는 신이 알려준 대로 뱀의 이빨을 땅에 뿌렸습니다. 그러자 땅에서 갑옷 입은 전사들이 여기저기 올라왔습니다. 놀란 카드모스가 전투태세를 보이자 땅에서 올라온 남자가 자신들의 싸움이니 빠지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서로 죽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서로 죽이다가 최후로 다섯 명이 남게 되었습니다. 다섯 명은 싸움을 그치고 카드모스를 도와 도시를 창건했습니다. 이 도시가 테바이(테베)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에서 소는 카드모스의 누이인 에우로페를 납치한 동물이자 카드모스에게 도시를 건설할 곳을 알려주는 전령의 역할로도 나옵니다. 그리고 카드모스가 뱀의 이빨을 땅에 뿌리자 전사들이 나온 이야기는 프로메테우스의 아들 데우칼리온과 퓌라 부부가 대 홍수 심판 이후에 돌을 뒤로 던지니 사람들이 나타나서 인류가 다시 땅에 퍼지기 시작했다는 것과 비슷합니다. 다만 카드모스 이야기에서 뱀의 이빨을 던져 나온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이 아니라 전사들이었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뱀이 전쟁의 신 마르스의 것이었기에 전사들이 나타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아무튼 카드모스는 거대한 괴물 뱀을 죽이고 테바이를 건설했는데 그 이후의 삶은 고단했습니다. 테바이를 건설했음에도 테바이 인들에게 쫓겨났습니다. 그리고 그의 딸은 제우스와 사랑했다가 제우스의 후광에 불타 죽었습니다. 제우스에게 자신을 정말로 사랑한다면 본래의 모습을 보여달라고 바가지를 긁다가 제우스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자 신의 후광에 불타 죽은 것입니다. 그리고 카드모스의 손자는 처녀신 아르테미스의 목욕하는 모습을 우연히 봤다가 저주를 받아 기르던 개에게 뜯겨 죽었습니다. 카드모스 자신도 끝에는 아내와 함께 뱀이 되고 맙니다.
선과 악의 문제
선, 악은 과연 무엇일까요? 카드모스가 처치한 뱀이 순수한 '악'이었다면 카드모스는 신들에게 축복을 받았을 겁니다. 그러나 뱀은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자신의 보금자리에 들어온 인간들을 죽인 것뿐입니다. 물론 카드모스 입장에서는 '악'이지만 뱀 입장에서는 그리고 뱀을 기르던 마르스의 입장에서는 뱀이 '악'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카드모스는 신의 노여움을 사 고단한 인생을 살게 된 것입니다.
비록 내게 악으로 보인다 해도 그건 나의 입장에서 일 뿐입니다. 전체의 입장에서는 악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때문에 신중해야 합니다. 그 일로 인해 생겨날 후 폭풍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일상생활 중에도 이런 일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나에게 손해가 되고 피해가 되는 일이라 복수를 하려 합니다. 그러나 그런 행동은 후에 또 다른 피해를 낳게 됩니다. 내가 보는 악이 '악'이 아닐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악인지 아닌지는 개인의 판단에 따르는 게 아니라 사회 규범과 법에 의해 규정돼야 합니다. 그것이 법치주의이고 개화입니다.
미개 사회일 수록 개인 간의 복수가 허용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면 법치는 설 자리가 없습니다. 법치가 서지 않으면 더 많은 사회적 피해자가 생겨 납니다. 그래서 개인적 복수는 금해야 합니다.
영웅이란 이런 사람!
그리스 로마 신화의 영웅들은 참 단순한 성격들이 많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나 친구가 죽으면 단순무식으로 쳐들어가 복수를 합니다. 어찌 보면 무모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이런 영웅들의 모습이 매력적으로 보입니다. 이거 저거 계산하지 않고 뒷 일도 생각지 않고 의리와 사랑을 지키기 위해 무조건 돌격하는 모습이 상남자스러워 보이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사회적 법치를 무시하는 그들의 모습이(물론 그 시대에는 법이 없었지만) 미개하게 보이는 게 아니라 자신의 운명에 당당히 맞서는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영웅이 영웅 됨은 위대한 업적을 남겨서가 아니라 운명에 당당히 맞섰기 때문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역사책에 기록되어 있는 영웅들의 모습을. 그들은 사실 그들이 이룬 업적보다는 자신들의 운명에 주눅 들지 않고 용감하게 맞섰기에 존경받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 중에 한 명이 이순신 장군이 아닐까 합니다. 장군은 위대한 업적을 이루려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자신과 나라의 운명에 맞서 자신의 이웃과 나라를 지키고자 당당히 맞선 것뿐이었습니다.
우리가 영웅에게서 배워야 할 점은 바로 그것입니다. 위대한 업적이 아니라 자신의 운명에 당당히 맞서는 모습!
그것이 우리가 영웅에게 진정 배워야 할 삶의 자세입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는 그러한 영웅들의 모습이 넘쳐 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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