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헤파이스토스는 제우스의 명을 받아
흙으로 여인의 몸을 빚었다.
아테나가 그녀에게 생명을 불어넣었고,
다른 신들도 각자 다양한 선물을 주었다.
이 선물 때문에 신들은 그 여인을 판도라(모든 것을 주는 자)라 이름 지었다.
이 여인의 딸이 피라였다.
"
- 히기누스, <우화집>, 142절 -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그리스 로마 신화>
전 편에서 프로메테우스가 인간들을 사랑해서 불을 주었고, 그로 인해 제우스가 화가 나서 결국 프로메테우스를 코카서스 산에 묶어서 3천 년 동안이나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는 고통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때 제우스가 얼마나 프로메테우스에게 화가 났는지 그를 코카서스 산에 묶기도 채 전에 복수를 계획했습니다.
그가 만든 인간들에게 재앙을 내리고 싶어 졌습니다.
그래서 불의 신이자 대장간의 신인 자기 아들 헤파이스토스에게 흙으로 여자를 만들도록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완성된 최초의 여자가 판도라였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이브가 최초의 여자이지만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는 판도라가 최초의 인간 여성입니다.)
제우스는 판도라를 이용해 인간들에게 재앙을 내릴 심산이었습니다.
불을 가진 대가를 치르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간파한 것인지 다른 신들은 판도라에게 여러 선물을 주었습니다. 온갖 좋은 것을 다 주었습니다.
아프로디테(비너스) 여신은 아름다움을 주었고 아테네 여신은 베 짜는 기술을, 그리고 상업과 외교의 신 헤르메스는 수려한 말솜씨를 또 아폴론은 아름다운 노래 실력을 주었습니다.
그 외에도 인간에게 도움이 될만한 많은 것들을 판도라에게 주었다고 합니다. 다만 그것들은 일정 기간 숙성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것들을 상자(항라리)에 넣었습니다.
이제 제우스는 흡족해졌습니다. 인간들에게 재앙을 내리기에 충분했기 때문입니다.
제우스는 다른 신들이 항아리에 담긴 선물들이 숙성되기 전에 인간 세상에 나오도록 할 심산이었습니다.
그래서 가장 강력한 무기인 '호기심'을 판도라에게 주었습니다.
제우스는 그 상자와 함께 판도라를 프로메테우스의 동생 에피메테우스에게 보냈습니다. 에피메테우스는 그 이름처럼 먼저 행동하고 생각은 나중에 하는 지라 판도라의 아름다움에 취해 덥석 받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를 예견한 프로메테우스는 절대 제우스가 주는 선물은 받지 말라고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불 사건으로 화가 난 제우스가 분명 보복을 할 것이 뻔했기에 제우스에게 속지 말라고 주의를 준 것이죠. 하지만 에피메테우스는 형의 말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덥석 그녀를 받았습니다.
처음엔 여느 신혼부부처럼 그들도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제우스가 판도라에게 준 치명적 선물, 호기심이 그녀를 가만 두지 않았습니다. 사실 제우스는 판도라를 에피메테우스에게 보내기 전에 절대 상자를 열어보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었습니다. 그러면서 '호기심'을 판도라에게 준 것이죠.
결국 판도라로 하여금 그 상자를 열어서 인간들에게 재앙을 내리려는 계획이었습니다.
결국 호기심의 여인 판도라는 더는 차지 못하고 상자를 열었습니다. 그러자 채 숙성되지 못한 많은 것들이 인간 세상으로 튀어나왔습니다. 그것들은 숙성되지 못했기에 온갖 나쁜 것이 되어 인간 세상에 퍼졌습니다.
미움, 시기, 질투, 질병, 가난, 전쟁 등등 나쁜 것들이 세상에 두루 퍼지고 말았습니다.
아차 하고 판도라는 뚜껑을 덮었으나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다 빠져나가 버린 뒤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대로 하나가 상자 안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희망'이었습니다.
희망은 단지 안에서 숙성되어 인간들에게 유익을 주고 있습니다.
다른 것들도 숙성이 되었다면 인간에게 좋은 것들이 되었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숙성되지 못한 채로 나와서 인간에게 재앙이 되었습니다.
어떤 것이건 제대로 숙성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좋은 역할보다 나쁜 역할을 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운전자가 차를 몰고 시내로 나가면 사고가 날 확률이 큽니다.
제대로 공부하지 않은 사람이 교사가 되어 학생들을 가르치면 잘못된 지식을 전수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처럼 제대로 숙성된 것이 세상에 이로움을 줍니다.
희망은 상자 안에 갇혀 숙성의 기간을 거쳤기에 인간에게 '희망'이라는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물론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은 희망은 절망의 다른 이름 또는 희망 고문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절망 중에도 버티게 하는 것을 나쁘다고 할 수는 없을 겁니다.
판도라 이야기는 당시의 작가에 따라 약간씩 내용이 다르다고 합니다.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헤시오도스는 심한 여성 혐오자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의 글을 보면 판도라로 대변되는 여성들에 대한 비하가 아주 심합니다.
그의 말을 들어보죠.
"그녀에게서 파멸을 가져다주는 여자들의 종족과 족속이 비롯되었는데 그들은 남자들과 함께 살 때에는 인간들에게 고통이요, 저주스러운 가난을 위해서는 적합한 동반자가 아니나 부를 위해서는 그렇기 때문이다."
- 헤시오도스의 신들의 계보, 천병희 교수 -
한마디로 여성들은 남성들의 등골을 빼먹는, 그래서 가난할 때는 도움이 안 되고 부자일 때는 열심히 돈만 갖다 쓰는 존재라고 혐오발언을 하고 있습니다. 요즘 같으면 길가다 여성들에게 린치를 당해도 할 말이 없을 겁니다.
하기사 여성들의 참정권이 생긴 것도 백여 년도 안되었습니다. 스위스 같은 나라는 1970년대에 들어서야 여성의 참정권이 인정되었다고 합니다. 아랍의 이슬람 국가들은 여전히 선거권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헤시오도스가 살던 그리스 시대야 오죽했을까요.
비록 상자를 여는 바람에 온갖 나쁜 것들이 인간 세상에 나와버렸지만 판도라는 인류의 조상입니다. 판도라 상자 사건 이후 제우스는 인간세상을 물로 쓸어 버립니다. 이때 판도라의 딸과 프로메테우스의 아들만 살아남게 되는데 이들은 부부였습니다. 그리고 이들에 의해 인간들은 다시 세상에 퍼지기 시작합니다.
희망이 또 다른 고문인지, 아니면 절망의 다른 이름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판도라의 이야기는 인간 세상에 절망스러운 나쁜 것들이 어떻게 생겨났나를 신화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번영에 대한 대가이며 과도한 호기심이 가져온 결과였습니다.
지금 세계는 날로 번영해 가고 있습니다. 판도라의 상자는 번영하는 세상 그 자체가 아닐까요?
그래서 인간이 번영하면 할수록 그 대가는 더욱 커지고 어느 순간 그것들은 인간을 덮칠 수 있습니다. 온난화에 따른 자연환경 파괴, 새로운 질병의 등장, 물질만능주의로 인한 탐욕스러운 짐승으로의 변화 등 말입니다.
너무나 빨리 변화해 가는 기술문명과 의식이 과연 어떠한 세상을 우리에게 가져올지 가늠하기 힘듭니다. 물론 낙관적으로 보는 과학자들이 많지만 분명 그 피해도 적지 않을 겁니다.
그것을 피하는 방법은 그것을 다루는 또는 만드는 인간들이 숙성되어야 합니다. 숙성되지 못한 인간들이 만들거나 관리하는 것은 그 자체로 재앙입니다. 망치가 목수의 손에 있으면 좋은 도구이나 불량배의 손에 들리면 흉기로 변하듯이 말입니다. 숙성된 사람으로 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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