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기억난다.
당시 내가 다니던 대학을 방문하여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사자후를 발하던 백기완 선생의 모습이.
이 나라 민주 운동의 앞 대열에 항상 서 있던 어른.
서슬 퍼렀던 군사독재 시절.
민주화 운동을 하다 끌려가 전두환에게 모진 고문을 당하고
그 후유증으로 지금도 가슴에 통증이 있다고,
그러나 길에서 일대일로 맞붙으면 자신 있다고 호탕하게 웃어젖히며,
이 나라의 민주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외치던 선생.
1987년 대선에도 출마했지만
실은 대통령이 되려 하지 않았다.
다만 민주 진영에서 김대중, 김영삼 두 분이 각기 출마하여
대통령 직선제에 의한 민주정부 수립의 기회가 날아갈까 염려되어 출마했었다.
두 분의 단일화는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고,
가망이 없음을 확인한 선생은 출마 포기를 선언했다.
그러나 그의 바람대로 되지 못하고
결국 다시 군인 출신의 대통령이 당선됐다.
당시는 살벌한 군사독재 시절이었기에 영웅들이 있었다.
국민의 권리를 위해, 힘없는 이들을 위해
겁 없이 앞장섰던 분들.
선생이 마지막으로 남진 말은 '노나메기'라고 한다.
노나메기는 '너도나도 일하되 모두가 올바로 잘 사는 세상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노나메기는 백기완 선생의 인생을 함축하는 단어 같다.
그냥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올바로 잘 사는 세상.
이것이야말로 선생이 그토록 이루고 싶었던 세상일 것이다.
김구 선생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다.
우리나가 강하고 부한 나라가 아니라
문화가 일등인 나라를 꿈꾸셨다.
지금은 진정으로 나라와 민족을 위한 위인들이 있을까 의문이 드는 시대다.
모두가 당리당략에만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물론 정의로운 정치인도 있겠으나 당리에 의해 힘을 쓰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이제 또 한 명의 위인이 떠났다.
어쩌면 지금은 위인이 필요 없는 시대일지도 모르겠다.
이제 서슬 퍼런 군사독재 시대도 아니고
공공연히 대통령에게 '놈'자를 아무렇지도 않게 붙일 수 있는 시대다.
다만 아쉬운 건
지금 대통령에게 '놈'자를 붙이는 이들 중 상당수가
군사정권이 국민들을 탄압할 때 과연 백기완 선생처럼 국민을 위해 소리를 냈었던가?
그때는 쥐 죽은 듯 있다가 지금은 맘 놓고 큰소리치고 있는 건 아닌가?
그러는 거라면 부끄러워해야 한다.
차라리 나처럼 조용히 살던지...
노나메기를 꿈꾸던 선생은 가셨다.
투쟁할 필요가 없는 곳에서 이제는 편히 쉬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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