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례와 능력 사이 =
궐이라는 고장에서의 일이다.
아마 공자가 어린아이 하나를 심부름군 삼아 어느 집의 주인과 연락을 주고받은 것 같다.
그런 일을하려면 말 귀가 좋아야 한다.
그리고 정확하게 전달해서 서로간에
오해가 생기지 않게 해야한다.
그리고 신속하게 움직여야 한다.
한 마디로 빠릿빠릿하고 명석해야 한다.
공자 정도 되는 분이 심부름군으로 삼았으니 그 아이도 뭔가 특별한 것이 있는가 보다 하고 누가 물었다.
"저 아이가 뭔가 진보가 있을 거 같습니까?"
즉, 앞으로 큰 발전이 기대되는 아이냐고 물은 것이다.
그에 대해 공자의 대답은 의외다.
한 마디로 싹수가 노랗다는 것이다.
어른 간을 왕래하며 말을 전해주는 일을 하는데
업무가 그렇다 보니 하는 행동이 버릇이 없다는 것이다.
공자가 본 그 아이의 모습은
어른의 자리에 같이 앉아 있고,
어른과 같이 나란히 걷는 모습이었다.
회사 사장과 길을 갈 때 사장님과 신입사원이
친구처럼 나란히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는가?
이사급 정도면 모를까 신입사원이 사장과
친구처럼 나란히 걸으며 이야기 하다니!
이건 예절도 모르는 버릇없는 행동일 뿐이다.
속에는 교만이 차있는 것이다. 분수를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자.
이쪽 어른의 이야기를 듣고 저쪽 어른에게 전해주려면 어쩔 수 없이 어른 옆자리에 앉아야 하고 어른과 나란히 걸을 수밖에 없다. 어른은 상석에 앉아 있는데 아이는 말석에 있으면 급할 때 어쩌겠는가?
그리고 나란히 걷지 않으면 말을 알아듣기 힘들고 어른 입장에서도 고개를 돌려 큰 소리로 이야기해주어야 하니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옆자리에 앉고 나란히 걷는 걸 가지고 못된 송아지 엉덩이에 뿔 난다고 말하면 그게 올바는 말일까?
공자 정도 되는 분이 그걸 모르진 않았을 것이다.
아마 그럴 상황이 아닌데도 그런 상황을 빌미 삼아 상석에 앉고 버릇없이 구는 것을 보았기에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나도 회사에서 일을 하며 나이를 먹어가다 보니
공자의 말에 수긍이 간다.
젊은 친구들 중에 능력 좋은 친구들도 많다.
그런 친구들이 예절도 갖추고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다는 아니나 유감스럽게도 그런 친구들은 다른 사람들이,
심지어 상사들도 답답해 보일 때가 많다.
그렇다 보니 주위 사람들을 한심하게 볼 수 있고,
그런 경우 예절을 잃어버리게 된다.
한심한 사람이니 무시하게 되고
무시하니 예절을 갖추지 못하는 것이다.
능력의 문제가 아니고 성격의 문제에서도 그렇다.
주변 사람들에게 생각나는 대로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잘못된 게 보이면 날카롭게 지적해서 상처를 준다.
그러나 자신은 솔직한 것이라고 한다.
한 마디로 솔직과 무례를 혼동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이렇게 능력은 좋으나 무례하고 예절이 없는 것을
공자가 지적한 것이라 생각한다.
능력이 좋기에 예절을 무시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능력이 있으면서도 예절을 얼마든지 갖출 수 있다.
이건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심성의 문제다.
아무리 능력이 좋아도 예절을 지키지 못할 정도의 심성이라면 차라리 능력이 없는 게 낫다.
그런 사람이 능력을 발휘해서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어떻게 될까?
물론 회사를 발전시키고 사회 변혁을 가져 올 수도 있다.
문제는 그런 회사의 성장과 사회 제도의 변화가 과연 세상에 이로울 것인가 하는 것이다.
히틀러나 스탈린을 생각해 보자.
그들은 능력이 있었다.
그것도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 그 능력을 마음껏 펼쳤다.
그 결과가 어떠한지는 잘 알 것이다.
왜 그렇까? 심성이 곱지 못한 것이다.
결국 생명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심성이 고울 수 있겠는가?
심성이 곱지 못한 것이 밖으로
드러나는 일차적인 행동이 예절이다.
예절이란 불편함과 불합리함을 참아야 행할 수 있다.
불편하고 불합리한 것을 알면서도 참는 건 상대방을 우선하는 생각이 없이는 힘들다.
즉 예절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은
적어도 자신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적을 것이다.
우리가 노력하고 기술을 발전 시키고 무역을 하는 것은
결국 모두가 행복해지기 위해서이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최고의 목적은 행복이라 했다.
그 행복을 얻기 위해 중용의 미덕을 강조했다.
자신의 능력으로 자신을 과시하려는 사람이
대체로 무례하고 주변을 위험에 빠뜨린다.
그 보다는 자신을 낮추고 자기의 능력을
주변의 행복을 위해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무례히 행동하면서 자기는 능력이 좋으니
그래도 된다고 생각해선 안된다.
말로는 동의하지만 실제 행동에선
무례한 경우를 종종 본다.
무례와 능력,
그 사이를 잘 구분할 일이다.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현각스님의 비판과 참된 구도 (4) | 2020.11.16 |
---|---|
난장판 민족 (6) | 2020.11.03 |
미움받을 용기 (2) | 2020.10.02 |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 진정 중요한 것은? (10) | 2020.09.28 |
고수는 다르다 - 재밌는 논어 (0) | 2020.09.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