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 / 2020. 9. 28. 21:18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 진정 중요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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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알려주신 주기도문의 거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과연 무슨 뜻일까요?

이 기도 속에 들어있는 진짜 중요한 뜻은 무엇일까요?

 

 

 

 

최근 이 제목의 영화가 개봉돼 인기를 끌었습니다.

영화 내용은 정말 악랄한 악인에게서 딸을 지키려는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두 주인공은 모두 킬러입니다.

킬러가 같은 직업을 가지고 있는 다른 킬러를 죽인다는 설정입니다.

 

그러나 한쪽 킬러는 살아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택한 직업이지만

다른 킬러는 말 그대로 킬러입니다.

그래서 조금 착한 킬러가 태생이 킬러인 나쁜 인간에게 쫓깁니다.

나쁜 킬러가 악의 화신처럼 그려져 있기에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라는 

제목을 사용했나 봅니다.

 


 

 

 

살아가면서 나쁜 일을 당할 때가 간혹 있습니다.

지금은 100세 시대이니 그 긴 세월을 어떻게 좋은 일만 겪을 수가 있겠습니까?

당연히 나쁜 일도 겪을 때가 있습니다.

오죽하면 불교에서는 인생을 고난의 바다라 했을까요.

염세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 역시 인생은 고통의 연속이라 했습니다.

그러기에 어쩌다 좋은 일이 생기면 기쁜 것이라고 했습니다.

기쁜 일이 더 많으면 그런 일이 있어도 기쁨을 느끼지 못할 텐데

기쁨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익숙하지 않은 상황이라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너무 걱정은 마십시오.

아무리 인생이 고난의 바다라 해도 인생의 위기라 할 정도의 고난은 자주 오지 않습니다.

그런 고난이 자주 찾아온다면 살아남을 사람이 별로 없겠죠.

그걸 보면 인생은 고해이긴 해도 대부분 견딜만한 고난인 거 같습니다.

성경에도 기록돼 있죠.

하나님은 감당할 수 있는 고난을 주신다고요.

그렇지 않은 고난에 대해서는 피할 길을 주신다고 말입니다.

마치 소설 데미안처럼 말이죠.

 

아무튼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선 나쁜 인간에게서 벗어나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삶에서도 그런 나쁜 인간이나 나쁜 상황에서 벗어나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라는 말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 째는 영화처럼 나쁜 인간이나 나쁜 상황에서의 구원이고,

둘 째는 나 자신이 그런 '악'이 되지 않는 구원입니다.

두 번째가 더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들 대부분이 착각하는 게 있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악인은 항상 타인이지 자신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겁니다.

내가 악에게 쫓길지언정 내가 악이 되어 누군가를 쫒지는 않는다는 생각입니다.

영화에서 '악'으로 나오는 킬러 레이는 우리도 언제든지 될 수 있는 모습입니다.

 

내가 '악'에게서 구원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악'이 되지 않는 일입니다.

 


 

 

 

 

작년에 영화 '조커'를 봤습니다.

주인공 아서는 현실의 부조리와 불평등 앞에서 무너지고 맙니다.

 

힘없고 선량했던 아서였습니다.

그는 여느 힘없고 선량한 사람들이 그렇듯 현실의 '악'에게 고통받습니다.

그리고 그 '악'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합니다.

하지만 그는 매번 짓밟힙니다.

 

결국 아서는 온 힘을 쥐어짜서 대항하던 '악'에게 먹히고 맙니다.

그는 시험에 빠졌고 그 시험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그는 조커가 되기 전에 한 번 더, 그럴 때마다 매번 한 번 더 기도해야 했습니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라고!

 

 

 

 

 

그렇습니다.

악의 고통에서 빠져나오는 것보다

악이 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러나 살다 보면, 고난을 당하다 보면

자신이 악이 되어 버리는 일도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서 악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태어나면서부터 악인이었을까요?

당연히 아닐 겁니다.

 

그런데 왜 '악'이 되었을까요?

모든 '악'에도 다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사탄도 원래는 천사였다고 하지 않습니까?

다 자기 나름의 이유가 있어서 사탄이 된 것입니다.

 

 

 

 

 

빚더미에 앉아 가정이 위기에 처했을 때

강도짓을 벌인다면 그게 악이 된 것입니다.

자신을 감당하기 어렵게 괴롭히는 진짜 악인을 만났다고

그를 죽인다면 자신이 악이 된 것입니다.

 

그것이 부당한 일을 겪는 순간의 욱하던 감정이었건,

평소 그런 방향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었건,

결국 그들은 자기 자신이 '악'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비록 합당해 보이는 이유가 있더라도 어쨌든 악이 된 겁니다.

 

이렇듯 고난을 당할 때 더 주의하고 조심해야 할 것은

자신이 '악'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때문에 항상 기도해야 합니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라고!

 

 

 

 

 

비록 고통스러운 인생이었지만

아서는 아서로 남았어야 했습니다.

조커가 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살아가는 길목에서 감당하기 힘든 고난을 만났을 때는 기도합시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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