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 / 2020. 9. 23. 21:32

분수에 맞게 생각하라! - 일일 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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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에 맞게 행동하라>


생각하는 데 있어 분수에 맞게 생각하라는 공자의 말씀이다.

여기서 분수라함은 직책이나, 형편, 신분 등등 말하는 사람의 모든 소셜 네트워크에서의 자기 위치를 말함일 것이다.

그런 걸 넘어서 말하게 되면 자칫 다툼과 갈등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 간의 질서가 무너질 수 있다.

이러한 것들이 무너지면 그 조직 자체가 위험에 빠질 수 있다.

그러니 말을 삼가고 다툼이나 갈등이 일어나지 않게 조신하라는 공자님의 말씀일 것이다.


이것과 비슷한 말이 있다.

<군군 신신 부부 자자>


왕이 왕답고, 신하가 신하답고, 아비가 아비답고, 자식이 자식다워야 한다는 말씀이다.

이 말은 바른 정치에 대해 묻자 공자가 해준 대답이다.

개인의 수양이나 사회의 질서 문제가 아니라 정치에 대한 담론인 것이다.

즉 공자의 관심 깊은 곳엔 정치가 있었다.




<공자>



자기 자리를 지키고 분수를 지킨다면 개인적으로도 위험에 빠질 일은 별로 없을 것이고,

그런 사람들이 모인 조직 또한 안정적이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괜찮아 보인다고 엄한데 돈까지 끌어당겨 전재산을 투자하는 것도 자기 지위(분수)를 잃어버린 행동이다.

이러다 패강망신의 지름길로 들어선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조직으로도 자기 주제를 모르고 함부로 나대면 안 된다.

말단 직원이 자기 지위를 모르고 사장의 할 일을 한다면 그 회사는 어찌 되겠는가?

그러지 않을 가능성도 있으나 많은 경우 회사는 휘청이다 문을 닫게 될 것이다.

그러기에 자기의 위치와 분수를 지키면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중요하다.





<제자백가 탄생의 이유>


공자가 살던 시대를 보자.

그 시대는 춘추시대, 맹자는 전국시대 사람이다.

춘추전국 시대가 어떤 시대인가?


군웅이 할거하여 나라가 이리저리 찢어진 때이다.

소설 삼국지 시대보다 더 혼란한 시대였다.

그래서 서로가 패자가 되고자 큰 나라는 작은 나라를 쳐들어가서 병합하곤 했다.

그러니 천하는 매일 전쟁으로 고통받고 있었고,

백성들이 농사지어야 할 들판은 피로 물드는 날이 많았다.


이러한 때에 공자 같은 지식인들이 어떻게 입을 다물고 있을 수 있겠는가?

저마다 국가 혹은 천하가 안정될 수 있는 방법들을 연구했다.


그래서 유가, 묵가, 법가, 명가, 도가와 같이 우리가 들어본 이름 외에도

음양가, 종횡가, 농가 심지어 잡가라는 학파도 있었다.

아마 이 외에도 여러 다른 학파들이 있었을 것이다.

오죽하면 제자백가라 했을까? 그만큼 많았던 것이다.


그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천하의 안정이나 나라의 부국강병책을 이야기한 것이다.

그렇게 해야 천하가 안정되고 백성들의 삶이 편안해질 것이라 기대한 것이다.

그래서 이들의 이야기는 실은 모두 정치철학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영화 공자의 한 장면, 엄격한 위계 질서가 보인다>




<유교의 문제점>


그것이 문제다.

그들의 이야기가 정치 철학이고 공자의 이야기도 결국 정치 철학인 것이 문제다.

정치 철학이다 보니 정치의 안정을 위해 상하 질서를 엄격히 지켜야 할 것으로 여겼다.

상하 질서를 중히 여기니 사회는 경직될 수밖에 없다.


군신 간의 상하 질서는 하나의 기준이 되어 주인과 종의 질서가 되고

가정에서는 아비와 자식, 남편과 부인 간의 질서가 되었다.


말에 분수나 자기의 지위를 넘지 말라는 이야기가 무엇인가?

결국 윗사람에게 함부로 덤비지 말라는 말 아닌가?

자기 주제를 알고 조신히 지내라는 말 아닌가?

가슴 뛰는 인생의 도전도 필요 없고

가난하거나 힘없는 계층은 자기 자리를 족히 알고 더 높은 저리를 넘보지 말라는 말 아닌가?


생각이나 행동이 자기 지위에 맞게 하라는 말은

자신의 처지에 알맞게 행동하라는 좋은 뜻도 있겠으나,

그것이 정치적 담론 하에서 나온 말인 이상엔 간단히 말해 함부로 기어오르지 말라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아러니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고 외친 사람도 나온 것 아닌가?


그런 생각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억울한 일들이 있었겠는가?

조선 시대 말기 탐관오리가 득실 때조차도 그들은 군군 신신 부부 자자를 외쳤을 것이다.

그러한 사상을 이용해 백성들을 억눌렀을 것이다.


세종대왕 때는 장영실이란 세계적 발명가가 있음에도

노비 출신이라는 이유로 천대하기도 했다.

그가 계속 과학 발전을 위해 일했다면 조선시대가 얼마나 더 발전했을까?





<공자 무덤을 부수는 홍위병들>




<공자의 부관참시와 부활>


모택동 시대 중국에선 공산주의 사상과 유학은 맞지 않는다고 유학을 배척했다.

유학의 시조인 공자는 철저히 배격당했다.

심지어 공자의 묘까지 파헤치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그렇게 부관참시라는 치욕을 당했던 공자가 다시 중국에서 부활했다.

공산주의와 맞지 않다고 했던 공자 사상을 2000년대 들어 슬그머니 부활시켰다.

돈도 생기고 이제 세계무대의 중심으로 나가려니 공산주의 사상을 가지고는 힘들었을 것이다.

뭔가 세계에 내세울만한 것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것이 공자였다.


내 생각에 또 다른 이유도 있는 것 같다.

공산주의는 국민을 철저히 통제하는 국가 시스템이다.

사회주의, 전체주의 정치를 하려니 국민을 통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공산주의 사상으로 통제하려니 강압적 이미지를 감출 수가 없다.

이때 유교는 그들에게 매우 좋은 구실이 된 것이다.

유교의 군군 신신 부부 자자 사상이야 말로,

그리고 생각이나 행동을 자기 지위에 맞게 하라는 사상이야 말로 그들에겐 너무나 좋은 정치 구호인 셈이다.

이제야 공자 사상의 귀중함을 제대로 본 것이다.

나쁘게 이용하는 게 문제일 뿐이다.

아니 공자의 사상은 그 근저에 이미 강압적 질서를 내포하기 때문에 공산주의자나 전체주의자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전쟁통의 세상을 어떻게든 안정시켜 백성들의 삶을 지켜주고 싶었던 공자의 진심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 방법이 공자의 의도와는 다르게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있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공자가 차라리 노자의 충고를 들었으면 어땠을까?

그러면 공자도 공산주의자나 봉건 주의자들에게 이용당하지 않았을 것이고

유교로 인해 억울한 일을 당하는 사람도 줄지 않았을까?


공자가 노자를 찾아간 자리에서 노자가 공자에게 따끔하게 한 마디 했다.


"당신이야 말로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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