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를 통해 배우는 사람의 자세와 가르치는 사람의 자세를 생각해 봅니다.
공자가 말했다. "한 묶음의 포를 예물로 가져온 사람이면 내가 일찍이 가르치지 않은 적이 없다."
(자왈 자행속수이상 오미상무회언)
논어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한 묶음의 포를 가져온 다는 것은 공부를 배우러 오는 사람이 자신을 가르칠 스승에게 드리는 일종의 교육비라 할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공자는 자신에게 교육비를 내면 다 가르쳐주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가르치는 자세
어떻게 들으면 교육비를 내야만 교육을 받을 수 있다로 들리기도 합니다. 공자는 자신에게 교육비를 내야만 가르쳤다는 이기로도 들릴 수 있습니다. 돈 없으면 배우고 싶어도 배울 수가 없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다르게 해석하면 교육비를 내는 사람이면 가리지 않고 다 가르쳤다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많이도 아니고 한 묶음만 가지고 오면 그 학생이 고관대작의 자녀이든 천민의 자녀이든 가리지 않고 가르쳤다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아마 후자가 맞는 해석일 겁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해석합니다.
공자가 돈 가져오는 사람만 가르칠 정도로 재물에 눈이 어두운 사람 일리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차별 없이 가르쳤다는 이야기입니다. 가문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배우고자 하는 마음만 있으면 누구나 차별없이 공평하게 배워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공자는 신분을 떠나 공평한 가르침을 실천했다고 한 것입니다.
이 구절에서 공자가 받았다고 하는 한 묶음의 포라는 것은 고기 말린 것을 말하는데 사실 당시 가격으로 따지면 아주 저렴한 것이라고 합니다. 즉 아주 조금이라도 무언가 가져오기만 하면 가르쳤다는 것인데 이것은 부하거나 가난하거나 차별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결코 돈 안 가져오면 가르치지도 않았다는 말이 아닙니다.
교육 받는 자세
그럼 아예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아도 가르칠 순 없었을까요? 아마 배우고자 하는 의지만 보여도 가르치지 않았을까 합니다. 실제로는 가르쳤으면서도 왜 한 묶음의 포라도 라고 이야기했을까요?
그건 배우는 사람의 자세를 말하는 게 아닐까 합니다. 거저 얻는 것과 조금이라도 값을 지불하고 얻은 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값이 지불된 것을 더 귀하게 여기고 더 끝까지 포기하지 않게 됩니다. 우리는 경험으로 이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공자는 공식적으로는 한묶음의 포라는 표현을 한 게 아닐까 합니다. 배우는 사람의 배우고자 하는 자세와 가르치는 사람의 공평한 가르침. 이 둘이 만나야 제대로 된 교육이 가능하다 할 수 있습니다.
이 시대의 숙제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떨까요? 강남의 부유층이 받는 교육과 강북이나 시골의 빈곤층이 받는 교육이 공평할까요?
공교육은 공평하지만 사교육에서는 공평하지 않습니다. 교육기관에 내는 교육비에 따라 가르침이 다르고 배움의 질이 달라지는 건 아닐까요?
그래서 공교육을 살려야 한다고 말하지만 공교육이 무너진 지가 오래입니다. 교권의 추락을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공교육 기관인 학교에서 가르치는 게 없다는 말이 들리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게 없으니 사교육 기관으로 가고, 사교육 기관은 돈에 움직이는 곳이니 공평한 가르침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공교육의 무게가 다시 살아나야 합니다. 이 시대의 교육관청과 공기관이든 사기관이든 가르치는 분들은 공자의 '자행속수이상 오미상무회언'의 말씀을 새겨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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